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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이야기/동부

새로운 자유의 탄생, Gettysburg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로 잘 알려진 Gettysburg. 미국 남북전쟁(the Amercian Civil War, 1861-1865)의 승부를 가른 분기점이 된 전투가 일어난 곳입니다. 델라웨어 윌밍턴에서는 랭캐스터 아웃렛을 지나 한시간 반 정도 더 가면 게티스버그가 나옵니다. (총 편도 2.5시간 소요) 게티스버그는 작은 옛날 도시와 게티스버그 전투의 유적지로 이루어져있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자주 찾는 역사유적지이자 관광지 답게 많은 미국인 관광객으로 붐빕니다. 게티스버그라는 작은 옛도시의 정취를 느낄 수도 있고, 게티스버그 뮤지엄과 유적지를 통해 남북전쟁이라는 미국 근대사의 가장 중요한 사건에 대한 이해도 넓힐 수 있습니다.

게티스버그 전투는 1863년 7월 1일부터 3일까지 단 3일간의 전투였습니다. 그러나 이 전투는 남군(Confederate Army)과 북군(Union Army)이 각자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은 전투였고, 사망한 군인이 11000명 가까이되고 사상자는 4만명에 달했습니다. 로버트 리 장군이 이끄는 남군은 이 전투 전까지는 승승장구하며 펜실베니아 지역까지 올라왔지만, 조지 미드 장군의 북군에게 패하고 말지요. 이후 남군은 전쟁의 전세를 역전시키지 못하고 남북전쟁에서 패하고 맙니다.

남북전쟁의 가장 큰 이슈는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노예제를 폐지하느냐 마느냐 였습니다. 특히, 미국의 영토가 서부쪽으로 넓어지면서 새로 편입되는 주로 하여금 노예제를 채택하게 할 것이냐는 당시 미국 정치의 핫이슈였지요. 노예해방은 흑인의 인권 문제도 아주 중요한 쟁점이었지만, 산업발전에 따른 노동력 공급 문제도 이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었지요. 당시 산업혁명에 버금갈 정도로 빠르게 공업이 발전하고 있던 북쪽 주들은 새로운 노동력을 갈구하고 있었고, 노예 해방이 노동력 공급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노예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공업중심의 북쪽 지역 주들에 대해 남쪽 지역 11개 주가 반기를 들며 연방을 탈퇴하게 되고, 나머지 주들은 탈퇴한 남쪽 주들을 반역자로 규정하며 남북전쟁(the American Civil War)이 일어납니다. 남쪽의 주들은 각 주들이 미합중국에 가입할 때 가입할 자유와 권리를 가지고 있는데, 왜 탈퇴할 권리는 없느냐며 각을 세우지요. 남북전쟁으로 미국은 두 나라로 갈라질 위기에 놓이게 되지요. 이때 미국이 두 나라로 갈라졌다면 지금 미국의 모습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역사도 바뀌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생각하니 게티스버그 전투는 세계역사를 바꾼 전투였네요 ^^;; 


게티스버그 전쟁 박물관이 있는 비지터센터(http://www.gettysburgfoundation.org/) 입니다. 주소는 1195 baltiomore pike, gettysburg, PA 이구요. 어른은 12.50불, 어린이는 8.50불을 내면 남북전쟁에 대한 영화, 게티스버그 전장을 360도 재현한 그림 Cyclorama, 그리고 게티스버그 뮤지엄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 말고도 버스나 승용차를 타고 설명을 들으며 게티스버그 전장터를 다니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굳이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나눠주는 지도만 있으면 직접 차를 몰고 다녀도 괜찮거든요. 찾기 쉽게 푯말이 잘 되어 있습니다.

링컨대통령 동상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미국대통령입니다.


남북전쟁에 참가했던 각 주들의 단추와 뱃지입니다. 여기는 북군(Union)이네요.



어디가 남군, 어디가 북군일까요 ^^* 우리에게 좀더 낯익은 오른쪽이 북군입니다.



사이클로라마(Cyclorama)입니다. 360도로 게티스버그 전장터를 재현해 놓아서 마치 그 역사의 현장에 와있는 느낌을 줍니다.


미국의 유적지를 가보면, 많은 것이 보존되어 있고 잘 꾸며 놓았을 뿐 아니라 자기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곳곳에 묻어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 유적지도 우리 아이들이 우리 역사에 대해 이해를 높이고 자부심을 줄 수 있는 그런 곳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남북전쟁에 관한 설명입니다. 남북전쟁은 4년간 62만명(전 인구의 2%)이 사망한 미국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전쟁이었다고 합니다. 크게 3가지 쟁점이 있었는데, 미합중국의 존치 여부, 노예 해방, 그리고 미국 시민권 문제라고 하는데, 앞의 두 가지가 이 전쟁으로 해소되었다고 하네요. 마지막 문제는 무엇이었는지 잘 모르겠네요 ㅎㅎ


초록색이 노예해방주(Free States), 붉은색이 노예주(Slave States), 그리고 노란색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주(Potential Free or Slave States)입니다. 델라웨어는 Slave States에 포함되어 있네요.


두 명의 대통령입니다. 아브라함 링컨과 남군의 제퍼슨 데이비스. 이 두 사람이 모두 켄터키 출생이라네요. 80마일 거리를 두고 태어났다고 합니다.


왼쪽은 북군인 Union 깃발, 오른쪽은 남군인 Confederate 깃발입니다. 남군 깃발은 11개주를 상징하는 별 11개만 있고, 북군 깃발의 별은 남쪽 11개주까지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남군(붉은색)과 북군(파랑색)의 진격 경로입니다. 서로 크게 맞부닥친 곳이 바로 펜실베니아의 게티스버그입니다.


남과 북이 서로를 겨냥했던 대포입니다.


링컨 대통령의 초상화입니다. 게티스버그와는 떼려야뗄수 없는 관계이지요.


1865년 4월 15일,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링컨이 암살을 당했습니다.


비지터센터를 나오면서 기부를 넣는 함을 발견했습니다. 특이하게 각 주별로 되어 있네요. 남북전쟁은 이 50개주가 하나의 국가로 탄생하고 유지되는데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게티스버스 전장터 중 펜실베니아 기념관입니다. 당시 펜실베니아에서 참전했던 군인들을 기리는 장소입니다.


뒤쪽으로 전쟁 막사를 재현해 놓고, 모닥불까지 피워놓고 있습니다. 북군 군인복장을 한 사람도 눈에 띕니다. 야, 정말 대단한데, 이렇게 전쟁현장까지 재현해 놓고...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가봤더니, 내일 영화촬영을 대비해서 미리 준비해 놓은 거랍니다 ^^ 자기는 영화배우고요. (아마 엑스트라겠지요.)

전장터마다 이렇게 대포가 놓여있습니다. 아득한 평원 너머를 목적없이 바라보면서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으로 유명한 게티스버그 연설은 게티스버그 전투가 끝난 4달반 후인 1863년 11월 19일, 게티스버그 전투에서 죽은 군인들을 기리기 위한 행사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찾은 게티스버그 뮤지엄에서는 그 연설의 제목을 "A New Birth of Freedom"이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말하자면, 유럽에서 자유를 찾아서 이곳 미국이라는 새로운 땅을 찾아온 사람들이 또 하나의 새로운 자유를 탄생시킨 것이네요.

하지만, 그때 탄생시킨 그 자유가 자라는 데는 참 많은 시간과 희생이 필요했습니다. 해방은 되었지만 실질적인 인권을 누리지 못했던 흑인들은 그들의 권리를 위해 게티스버그 전투 이후로도 100년 이상 싸워야 했지요. 마틴 루터 킹 Jr. 같은 수많은 흑인지도자의 노력과 희생도 필요했고요.

게티스버그 전쟁박물관에서 20여분의 짧은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 당시 흑인들의 인권 상황과 남북전쟁의 배경, 그리고 게티스버그 전투의 전개와 결말 등이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그 영화가 끝나갈 무렵, 아브라함 링컨에서 마틴 루터 킹 Jr., 그리고 버락 오바마로 이어지는 사진들이 쭉 지나갔습니다. 같은 듯, 다른 듯...역사는 이러한 사람들의 헌신과 희생 속에 만들어지고 진보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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